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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혼(神聖婚)의 복음(福音)자리인 7월!
-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품지>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지혜가 일곱 기둥을 깎아 자기 집을 지었다”(잠언 9,1)
그리스어로 헵타드(Heptad)라 불리는 숫자 7은 가장 완전한 숫자로서 ‘전체성’ 또는 ‘완성’을 의미하며, 우주와 인간을 포함하는 대우주를 나타내는 수이자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수라고 합니다. 즉, 일곱은 하늘과 영혼(靈魂)을 의미하는 셋(3)과 대지와 육체를 의미하는 넷(4)을 더한 수로, 셋은 하느님의 영역을 그리고 나머지 넷은 자연 또는 인간의 영역을 뜻하며 이 셋과 넷이 합쳐진 일곱은 완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완전과 완성의 수인 7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영역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세 가지 찬양과 인간의 영역인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네 가지 청원이 모여 그야말로 완전한 기도가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거룩한 숫자로 완벽을 상징합니다. 히브리 단어 ‘cheba’는 ‘일곱’이라는 뜻과 ‘계약’이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강복하신 날이 이렛날이었기에(창세 2,3) 일주일은 7일로 정해지면서 제 7일은 안식일이 됩니다. 모세가 죽은 뒤 그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예리코에 쳐들어가던 날 아침, 계약의 궤를 앞세워 숫양 뿔 나팔을 든 사제 일곱 명과 군사들로 하여금 성읍을 일곱 바퀴 돌게 하여 이렛날에 기적적으로 요르단의 이 거점을 함락시켰습니다(여호 6,4 참조).
레위기에서 “칠 년째 되는 해는 안식년으로, 땅을 위한 안식의 해”(25,4)라고 정하여, 칠년 마다 농사짓던 밭을 묵히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일러주신 등잔대(메노라)에도 일곱 개의 등잔을 얹은 일곱 개의 가지가 있었습니다(민수 8,2). 다니엘이 던져진 사자 굴에는 일곱 마리의 사자가 나오며(다니 14,32 참조), 삼손의 잘린 머리카락도 일곱 가닥이었습니다(판관 16,13 참조). 솔로몬의 신전은 일곱 개의 층계식 구조였으며 야곱이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기까지는 각각 칠년 동안 일을 해야 했습니다(창세기 참조). 그리고 요셉은 일곱 마리의 살진 암소와 일곱 마리의 마른 암소가 나오는 파라오의 꿈을 해몽하여 이집트의 총리가 됩니다(창세 41장 참조).
이와 같은 7의 상징성은 신약성경에서도 나타납니다. 마르코 복음 8장은 예수님께서 일곱 개의 빵을 쪼개어 군중을 배불리 먹이셨고, 이 부스러기가 일곱 바구니나 남았다는 기적 이야기를 전해줍니다(8,5-10 참조). 또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18,21-22 참조).
뿐만 아니라 요한 묵시록에는 거의 각 장마다 완전함과 완성을 의미하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7개의 교회, 7개의 금 촛대, 7개의 별 등 수많은 7의 상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환시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관련이 있으며(묵시 1), 어린 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으로 하느님의 일곱 성령을 가리킨다고 합니다(묵시 5,6). 어린 양은 일곱 봉인을 떼고(묵시 6),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붑니다(묵시 8,6).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들과 예수님이 호숫가에서 만나고 나서 오순절에 마침내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강림’(사도 2장 참조)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지상의 교회가 시작됩니다. 교회에서도 7은 일곱 가지 죄의 뿌리(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라든가 성령의 일곱 특은(지혜, 통찰, 두려움, 의견, 굳셈, 지식, 효경), 일곱 성사(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신품, 혼인)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곱은 매우 중요한 숫자로 여겨집니다. 특히 그리스도교 입문성사인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는 신앙생활의 기초를 놓는 성사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사를 통하여 인성에서 거룩한 신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며, 하느님의 풍부한 생명을 더욱더 풍부하게 받으면서 완전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혼인과 관련하여 성경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로 시작하여 “어린양의 혼인 잔치”(묵시 19,7.9 참조)에 이르기 까지 혼인의 신비와 하느님께서 혼인에 부여하신 의미, 그 기원과 목적, 구원의 역사를 통한 다양한 혼인의 실현, 죄로 인한 혼인의 어려움과, “주님 안에서”(1고린 7,39), 그리스도와 교회의 새로운 계약 안에서의 혼인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 전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전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모든 문화에는 혼인의 숭고함에 대한 의식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혼인은 단순히 인간적인 제도를 넘어섭니다. 혼인으로 잉태된 새로운 가정은 하느님이 맺어주신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하기에 하느님이 머무시는 가장 거룩하고도 평안한 처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을 통하여 부부와 자녀들에게 각자의 소명을 주시고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혼인을 통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새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고 교육하고, 자녀가 출가하고, 곁에 남은 배우자가 떠나고, 홀로 남은 또 다른 배우자마저 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지체인 가정은 생노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또 하나의 생명체로서 하느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결합하는 가장 거룩한 성소이자 사랑의 복음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적 자율권이 남용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일부 남녀의 사랑이 무절제와 방종으로 인해 타락의 길을 걷고 있으며, 가정이 해체되고 그로인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늘어가고 있는 요즈음, 혼인의 참다운 의미와 가정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도 혼인을 앞둔 젊은이들이 혼인성사 안에서 하느님 사랑과 온전히 결합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인성과 신성이 하나 되는 신성혼(神聖婚)이 가능해질 수 있음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산과 바다, 들과 호수, 그 어디를 가도 푸르른 생명들이 저마다의 소리와 색깔로 신비로운 향연을 펼치고 있는 7월! 신성혼(神聖婚)이 이루어지는 복음(福音)자리인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들 자신과 우리들 가정이 하느님의 품인 자연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푸르름으로 익어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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