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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몽골아이사랑 31호 - 시몬신부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8.02.18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969
내용

다음은 몽고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는 살레시오 수도회 이호열 시몬 신부님이
2월 <몽골아이사랑 소식지>에 실으신 글입니다.

사순시기입니다.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나그네에게 따뜻함을,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 곧 나에게 해 주는 것이다” 하신 주님. 이런 일들은 신자이던 아니던 착한 사람이면 모두가 가능한 일이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인본주의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성화에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감지할 수 있는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는 시기가 바로 사순시기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신앙행위인‘기도와 단식과 자선’이 강조됩니다.

이 시기에 누구나 완덕에로 나아가기 위해 성사를 보고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특별히 자기 자신을 끊고 비우기 위해 단식을 합니다. 단식이란 금요일 금육을 지켰다 안 지켰다 셈을 해서 고백성사 보는 그런 차원이 아닌, 약속한 단식을 했다 안했다 셈을 하며 마음의 부담을 갖는 그런 차원이 아닌, 그것보다 더 나은 게 있다면 지금 나의 신앙현실에서 비인간적이고 몰인격적인 먼저 금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찰과 자각으로부터 근본적인 정신의 개혁이 요구됩니다.

이번 사순시기에는 우리 영혼에 나쁜 것을 먹지 않는‘금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리 영혼에 좋은 것을 배불리 먹는‘만찬’이 되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비판을 금식하고 칭찬의 만찬을 즐기라.
성미 급함을 금식하고 온유함의 만찬을 즐기라.
질투를 금식하고 사랑의 만찬을 즐기라.
거짓을 금식하고 진실의 만찬을...
자기 핑계를 금식하고 책임의 만찬을...
유감을 금식하고 감사의 만찬을...
이기심을 금식하고 봉사의 만찬을...
두려움을 금식하고 믿음의 만찬을 즐기라.
(글: 이정우 신부님 "사순절- 금식보다는 만찬을" )

이번 소식지는 이러한 삶을 살다간 봉사자 김기천 바오로가 몽골을 떠나며 쓴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2년 반 동안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일명 바오로 삼촌, 그 본명을 내가 지어주었지만 그는 가톨릭 신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함께 살았던 기간 동안 나에게 보여준 복음적 정신과 삶에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바오로의 진솔한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 메아리쳐 근본적인 사순의 의미로 잘 살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2월 15일 서울에서 이호열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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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는 길을 찾아 나선 몽골생활

김 기천(바오로 삼촌)

시인 프러스트의 말처럼 세상에는 여러 갈래 길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그 중 한 갈래를 찾아 길을 나선다. 선뜻, 혹은 망설이다가.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나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싶었다. 붙잡는 손이 많아서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해서 떠나온 곳이 바로 이 몽골이다. 생각이 많았지만, 더러는 계산속도 복잡했지만 난 한 갈래 길을 찾아, 금지된 길을 찾아 홀연히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몸을 푼 곳이 암갈랑 돈보스코 청소년센타이다. 2005년 3월 혹한의 칼날이 서슬프르던 그 때 나는 눈보라치는 벌판에 한 그루 나무처럼 그렇게 암갈랑에 서 있었다.

한국에서 십 년 동안 논술선생을 하며 입으로 풀어 먹고 살아온 나는, 배운 것이라곤 가르치는 일밖에 없었던 나는 입이 아닌 몸으로 살아보겠노라고 거듭 이를 앙다물었다. 모든 것이 어설펐던 나는 몇 번이나 망치질에 손이 으깨졌고 쉼없는 노동에 입이 부르텄으며 못에 발이 찔리고 탈진하여 무너졌다.

미련한 고행. 그러나 달디단 결실이 내게 주어졌다. 집이 없고 부모로부터 뛰쳐나와 갈 곳이 없는‘길거리 아이들’은 그 때 처음 만나서 2년 반 동안 내 친구이자 동생, 가족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슬픈 영혼’인 그들은 내 삶의 고갱이로 남아 있다.

나는 날마다 언 땅을 깨서 밭을 일구었고 불가능과 씨름하는 심정으로 씨를 뿌리고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으로 결실을 거둬들였다. 말과 문화에 서툴렀던 내가 아이들과 힘을 모두어 집을 짓고, 요리를 하고 들판을 치달리며 공을 차고, 낡은 포르곤을 몰아 학교길을 도왔다. 키 작고 성질 급한 나는 어느새 아이들의 든든한 ‘삼촌’이라 불리었고 더불어 우리 가족도 그들과 한 형제가 되었다. 엉겁결에 몽골길을 따라나선 아들과 딸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형과 언니, 이모를 거느린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늘상 말을 달리며 초원을 노래하고 자유를 구가하던 그들이 비닐하우스에서 돋아나는 갖가지 채소와 열매에 환호하고 소득으로 얻은 얼마 안 되는 돈에 감동을 감추지 않았다. 첫 해 관망자였던 그들이 이듬해에는 적극적인 조력자가 되었고 이런저런 간섭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협력자가 되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나에게 몽골을 가르치려 하였고 몽골을 사랑하고 노래하는 방법도 기꺼이 전수해 주었다. 몇몇 아이들의 끊이지 않는 사고와 거듭되는 부주의와 마음을 태우는 충동질도 결코 내 행복을 앗아가지 못 했다.

길을 찾아 나선 나에게 아이들은 길을 안내하는 선생노릇을 해주었다. 길을 찾지 못해 길에서 헤매던 길거리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하나둘 스스로 터전을 일구고 삶의 목표를 세우고 모든 것을 나누며, 어려움도 거뜬하게 넘어서는 것이었다. 나는 극한의 어려움 앞에서 얼굴 찡그리며 불평하던 아이들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없는 것을 탓하며 부족한 것에 갈증을 내던 아이들이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 마음씀씀이는 내게도 고스란히 미쳐 한여름 뙤약볕 아래로 새참을 내오고 허술한 한겨울 내 옷차림새를 염려하고 거들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내가 가고 있는 길의 실체를 조금씩 깨달았으며 앞으로 더 가야 할 길을 엿보았다. 더불어 내게 금지된 길을 가늠하게 되었다.

자연은 내 삶의 새로운 길동무가 되었다. 몽골의 들꽃은 한국의 그것과 참 다르다. 본래부터 화려하고 성성한 것보다 가녀리고 키작은 것을 눈여겨보던 나였던 터다. 그런데 몽골의 꽃은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았고 위태해 보였다. 그것은 차마 무릎을 세우고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는 마주할 수 없도록 땅에 바짝 엎드린 채 제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난 무릎을 꿇었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으며 흙냄새와 입맞춤을 하며 그것과 만났다. 거칠기 짝이 없는 환경과 인정사정없는 날씨 속에서 지독하게도 질기고 강하게 자라난 꽃은 마치 나에게 경배를 요구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한없이 낮아졌고 그리고 마침내 마음이 스르르 열렸다.

2년 반의 암갈랑 생활을 마치고 울란바타르를 향해 발길을 떼던 2007년 9월 3일 이른 아침, 난 눈물바람일랑 일찍이 물리쳤다. 작별의 회한이야 왜 없을까? 새벽미명이 뒷걸음질하고 동살이 퍼지면 밤새 숨죽였던 모든 사물이 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산자락도, 둥근 게르 지붕도, 미루나무 우뚝선 강줄기도, 일감을 찾아 나선 길손들의 무거운 발걸음도 점차 또렷해지는 순간이다. 그랬다. 난 암갈랑 아이들 앞에 길이 열리는 것을 보았고, 또 내 삶의 길 또한 홍해바다처럼 시원스레 열리는 것을 오롯이 체험했다. 난 행복했고 모든 것이 뚜렷해지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만나서 알고, 부대끼며 살아온 모든 인연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암갈랑을 나서는 길은 검둥이 개 순자와 흰둥이 차가나의 배웅만으로도 충분했다.

2007년 9월은 울란바타르에 죽 살아오던 내가 울란바타르를 아주 색다르게 만난 첫걸음이었다. 한여름 농사일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영락없는 촌놈에 다름 아니었던 나를 품에 안 듯 반긴 이들은 다름 아닌 세종학당 학생들이었다. 확실히 그들은 암갈랑 아이들과 달랐다. 훤칠하고 세련됐으며 또 재치 있고 교양이 넘쳤다. 그것이 다는 아니어서 그들은 열정이 넘쳤고 부드러웠으며 의지가 충만했다. 한국에서 십 년을 아이들과 씨름했던 나에게조차 그들은 경이로웠다. 나는 일찍이 배우는 일에 그들처럼 기운 넘치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무슨 일을 하나 능력을 셈하고 다투기 전에 열정을 앞세워 뛰어드는 그들이었다. 빡빡한 일과 중에도 밤마다 세종학당에서 만나는 그들을 통해 나는 기운을 북돋우었고 신바람에 몸을 떨었다. ‘한국말’이란 징검다리를 훌쩍 건너 우리는 서로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삶의 가치를 아낌없이 나누었다. 그들은 내가 만난 어느 부류보다 더 거침없이 내 속에 파고들었고 나 역시 물먹은 솜처럼 그들 속에 스며들었다.

몽골 속담에 ‘하늘의 새는 날개가 없으면 힘이 없고, 땅 위의 사람은 친구가 없으면 힘이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모름지기 친구에 목마른 세태다. 참다운 인연이란 과연 이 땅에 살아 있기나 하냐는 장탄식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오늘이다. 감히 나는 이야기한다. 암갈랑에서, 그리고 세종학당에서 처녀지의 들풀처럼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인연과 친구들을 만났다고 말이다.

나는 이제 지난 3년 간의 몽골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 어렵게 간 길 왜 돌아왔느냐고, 다시 또 그 길을 갈 것이냐고 누군가 물을지도 모를 일이다. 몽골에서 무엇을 얻었느냐고 거듭 재촉할 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다시 여러 갈래 길이 놓여 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손사래를 치며 안 된다고 말릴 길, 갔다가 후회해도 돌아오기 힘든 길이 말이다. 그래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길을!!!

몽골 소식

♣ 몽골 아이 사랑 "일일 카페" - 차와 식사
언제 : 2008년 2월 23일(토) 12:00-21:00
어디서: 시청역 10번 출구 "오키토키"
(진행방향 - 우리 은행 골목 -도보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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