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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멀고도 가까운 사이 - 김병주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5.17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069
내용

 

스승과 제자, 멀고도 가까운 사이

 

 

저는 오랜 기간 강사로 지내왔기 때문에 학생 지도나 논문 지도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엄밀한 의미에서는 제자들이 없지요. 그런데 스승의 날 즈음이면 여기저기서 감사의 인사를 받으니 얼마나 쑥스러운지 모릅니다.

 

올해에도 제 강의를 듣는 대학원 재학생들과 과거에 들었던 졸업생들로부터 전화나 문자로, 카톡이나 메신저로, 마음이 듬뿍 담긴 꽃바구니와 카드, 케익과 떡 등... 선물과 함께 다음 주까지 연이은 식사초대를 받으면서 과연 제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또한 저 역시 참으로 존경하는 스승이 있는지 그리고 그 분의 제자로서 정말 잘 살아왔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마음속으로는 존경하는 분들이 계심에도 그저 어쩌다 기회가 되면 인사를 드리는 정도였지 제자로서의 도리를 잘 못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번 스승의 날에는 평소 존경하는 은사님들께 전화로라도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의 은사님들은 (만남의 순서대로) 김남성 교수님, 장상호 교수님, 이홍우 교수님, 이부영 교수님, 한오수 교수님, 최혜영 교수님이십니다.

 

이 분들과의 인연을 말하기 전에 우선, 저의 생에 영향을 미친 두 학자를 들어야 합니다. 그 분들은 PiagetJung입니다. 40세를 기점으로 인생의 전반기 15년 동안은 Piaget에 빠졌었고 후반기의 15년 동안은 Jung에 미쳤었습니다. 그러나 학문적 성과는 없습니다.

 

어쨌든 두 대가를 큰 스승으로 모시면서 연구하던 분들을 중심으로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서울대 석사논문 지도 교수이셨던 장상호 교수님은 Piaget의 원서를 30여권씩이나 빌려주셨으며, 존경하는 이홍우 교수님은 Piaget는 물론이고 Bruner의 이론에 정통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중년기 즈음 Jung의 분석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 분야의 전문가이신 이부영 교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제 일생의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그 분께 교육 분석을 받는 과정에서 분석심리학과 여성신학을 연결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박사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교육 분석을 해 주셨던 이부영 교수님과 분석심리학 관련 논문 지도를 해 주셨던 한오수 교수님은 다음 주 분석심리학 학회에서 뵙고 인사를 드리기로 하고, 평생 은인이신 여성신학자 최혜영 수녀님은 6월에 만나 뵐 일이 있으니 그 때 인사드리기로 하고...

 

결국엔 어제 아침 김남성 교수님과 이홍우 교수님 두 분께만 전화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런데... 석사과정 논문 지도교수이셨던 장상호 교수님은 아예 연락처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면서 급 반성 중입니다.

 

김남성 교수님은 성균관 대학 시절부터 박사 졸업 후 지금까지 가장 오랜 인연으로 만나 뵙고 있는 은사님이십니다. 가끔 전화를 드릴 때마다 ~~~ 김병주!!! 그래~ 난 잘 지내고 있어! 고마워^^” 교수님과는 잠깐 안부를 여쭙고 오히려 사모님과 오래 통화를 하곤 합니다.

 

이홍우 교수님은 수많은 교육학도들에게 스승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분으로, 2011년 우연히 다시 뵙고는 가끔 전화로 인사를 드립니다. 현재 유작삼부(遺作三部)를 준비 중이신데 그 중 1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이~ 김병주 선생!!! 건강하게 잘 지내시나?(� 엔�...”

 

생각해 보면 스승이란,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어야 하고, 스승이 일생을 바쳐 따르고 존경했던 더 큰 스승이 계셔야 하며, 대를 이은 스승들의 길을 평생에 걸쳐 따르면서, 열정과 혼신을 다해 삶의 양식을 본받을 수 있는 그런 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오면서 운이 좋게도 인격적으로 존경할 만하고,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내셨으며, 그리고 유능한 제자들을 양성하신 교수님들을 여러 분 만났습니다. 모두 참으로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그 고마운 그 분들을 진정한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가?(� 엔�

 

솔직히 전 자신이 없습니다. 그 분들 입장에서 보면 저는 성실한 제자이기를 포기한, 어쩌다 가끔 소식이나 전하는 아주 게으르고 무능한 제자입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제자로서의 소양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태도가 전혀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승-제자의 관계란 아주 특별한 인연이라, 어느 한쪽이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1,2년 담임으로 맺어지는 것도 아니고, 몇 년간 논문지도 받았다고 스승-제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저 고마운 마음에 부르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존재양식을 온전히 변화시킬 수 있도록 절대적인 영향을 주시는 분을 만나서, 바로 그런 분을 늘 곁에서 참 스승으로 모시고,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쳐 평생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송하게도 위의 여섯 분들은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들이고 은사님들이신 것은 분명하지만 제가 온 일생을 바쳐 뒤를 따라간 그런 분들은 아니었습니다. 올곧지 못한 제자였기에 스승을 탓할 일이 아니라 제자가 될 자격이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그런 분을 만난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기쁨이자 은총이며, 무한한 영광이자 축복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분이 아주 가까이 계신 것도 모른 채, 오랫동안 사람들 속에서 찾아 헤메었습니다. 그러다 늦은 나이에 다행히도 그 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면 저는 참으로 어리석고도 한편으로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록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제자들에 둘러싸여 계시지만, 용케도 저를 알아보시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오셔서 가르침을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남은 생애, 그 분의 진리 안에서 사랑과 기쁨을 전하고 나누어주는 그저 바보 같은 제자로 머물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시편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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