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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상징적 의미
전례 상으로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11월! 사라져 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매 순간 잘 이별하고 잘 죽을 수 있을 때, 새로운 삶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이별과 좌절과 상실과 고통의 시간들 그리고 공간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습니다. 하지만 이별과 상실의 슬픔 뒤에 오는 새로운 만남과 출발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아름다운가 봅니다.
어머니의 태를 열고 자궁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최초의 순간부터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산다는 것은 어쩌면 소중한 것들을 만나는 동시에 더욱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상실(喪失)로 시작해서 상실(喪失)로 끝을 맺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젖을 떼야만 하는 아픔부터, 매일 우리는 엄마를 떠나 집과 헤어지는 연습을 했으며, 해마다 선생님과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고, 때론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와의 이별과 이혼을 경험할 수도 있었으며, 부모나 가족을 잃어버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든 고향을 떠날 수도 있었고,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질 수도 있었으며, 예기치 않게 자신의 소중한 신체 일부를 상실하기도 하고, 때론 현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꿈과 이상을 접어야 하는 슬픔을 맛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는 잃어버리는 젊음과 건강과 일과 성적능력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들, 어느 날 갑자기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사람들과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 모두 사라져가고 있기에 슬프고, 사라져갈 것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을 마음에 담으면서 다시 새로운 소망으로 영원을 꿈꾸어 봅니다. 다음은 작년에 올렸던 < 11월의 상징적 의미> 글을 그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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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11(Hendeka)은 속죄와 심판을 상징하는 수로 어원상 ‘하나가 넘친다’ 또는 ‘하나가 남는다’는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10을 완결된 완성수로 생각했기 때문에 11은 지나침을 의미하는 불필요한 수이며 충만하고 완전한 수 10에 하나가 추가된 것은 조화와 논리에 반하는 교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11은 완결 수인 10과 12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비록 어정쩡한 수이지만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숫자 11은 보다 완전한 12로 도약하거나 이전의 완전한 10의 상태를 돌아보면서 속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수입니다.
11과 12 사이에서 인간은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마침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때를 인식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는 유예 기간을 가지게 됩니다.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직전까지는 인간에게 아직 구원의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숫자 11은 5와 6, 곧 지상과 천상이 결합된 소우주와 대우주의 위대한 결합의 수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합은 결국 각개인의 몫으로 남아있습니다. 소우주와 대우주의 결합으로 가는 과정 자체가 그리 만만치 않으며 반드시 그 전 단계를 거쳐야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에는 숫자 11의 모습이 명백하게 그려지는데, 바로 심판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성경에는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요한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심판에 관한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나 심판은 결국 속죄와 회개를 통하여 구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선 인간이 타락한 뒤 행해진 첫 번째 심판은 카인의 살인행위(창세 4,11)이며, 두 번째 심판은 노아의 홍수(창세 7,11)입니다. 세 번째 심판은 가나안 열한 명의 아들들(창세 9,25)이고 네 번째 심판은 바벨탑 사건(창세 11,7)입니다.
다섯 번째 심판은 소돔의 멸망(창세 19,11)이고, 그 밖에도 이집트에 대한 하느님의 열한 가지 심판(재앙)(탈출기), 삼손에 대한 몸값 1100개(11×100)의 은과 삼손에 대한 심판(판관 16,5), 솔로몬에 대한 심판(1열왕 11,11)이며 마침내 이스라엘은 여호아킴과 치드키야의 11년간의 이스라엘 왕국 통치의 결과로 멸망하고 맙니다(2열왕 23-24장).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신으로 사도의 수가 11명이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형을 받으십니다(갈라 3,13 참조). 이 때 예수님의 나이가 33세(3×11)라는 것은 3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뜻함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돌아가심은 하느님(3)께서 우리가 받을 심판(11)을 대신 가져가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1은 또한 7과 상호관련성이 매우 큽니다. 7과 11은 운율이 맞는 유일한 두 수로서 7=3+4, 11=5+6과 같이 3,4,5,6이 완벽한 등차급수를 이루며 신기하게도 여기에서 3×4×5×6=360이 나옵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한 묵시록에서는 7이란 수가 계속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7은 완전함을 그리워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속죄와 심판의 상징인 숫자 11을 통하여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죄 많은 자신을 자각하고 영원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새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도록 희망을 제시해줍니다.
가톨릭 전례에서도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위령성월이란,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속죄와 심판의 달인 11월에 돌아가신 영혼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면서 동시에 죽음 앞에서 있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11월! 준비하는 자들에게 허락된 회개와 보속의 시간들을 통하여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복된 11월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_()_
< 참고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2005), 성경.
Michel Christiaens저, 장익 옮김(2002), 성서의 상징, 분도출판사.
Michel Feuillet저, 연숙진 역(2004), 그리스도교 상징사전, 보누스.
Otto Betz저, 배진아. 김혜진 역(2009). 숫자의 감춰진 비밀, 푸른 영토.
매일미사(201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1월호.
명백훈(2006), 숫자 11 – 속죄와 심판의 수,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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