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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의 상징적 의미 - 김병주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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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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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501
내용


1월의 상징적 의미

그리스어로 ‘모나드(Monad)’라고 부르는 숫자 1은 모든 수의 출발점이자 존재의 기원이 되는 수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말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형상을 갖는 이유는 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로부터 수를 빼앗아 버리면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버린다”(「판단의 자유에 대하여」 2권에서)....


흔히 점이나 원으로 표현되는 모나드(1)는 세상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고, 모든 물체와 역사의 근본이 되고 있으며, 모든 운동의 출발인 동시에 회귀의 바탕이 되는 중심점이자 집합점이기도 합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에 따르면 원의 형상은 자신에게서 나와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마치 원처럼 모든 정수 속에는 1이라는 수가 숨어 있으며 자신 안에 고요히 머무는 1은 그 하나 안에 원초적 통일, 태초, 창조자, 중심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각각의 사물들이 보여주는 다양성 속에 신적인 통일성이 존재하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다채로움 속에 나누어지지 않은 것이 존재하기에 1은 모든 존재의 아버지이자 어머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1은 짝수이면서 홀수라 했으며, 신 플라톤주의자 플로티누스는 '일자(oneness)'가 모든 존재하는 사물의 원천이라는 '유출설'을 제창하였습니다. 즉 만물이 나뉘기 전에 존재한 것은 일자였기 때문에, 만물의 궁극자는 일자(一者)뿐이라는 것입니다.

역경(易經)에서는 이 궁극적 일자(一者)를 우주를 나타내는 태극(太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자인 태극에서 음양(陰陽)이 분리되고 다시 사상(四象)과 팔괘(八卦) 그리고 이 팔괘를 위 아래로 중첩하여 64괘(卦)로 나뉘게 됩니다.

힌두교에서는 모든 경계가 사라진 삼매(三昧, Samadhi)의 상태를 두고 '하나'되는 경지라 했고, 이것은 의식 없는 것을 의식하는 상태라 했습니다. 이런 하나의 상태는 ‘반영하면서(reflection)’ 동시에 ‘반영되어지는(reflected)’ 것이기도 합니다.

구약성서에서, 신의 이름은 하나라 했고, 이슬람교에서 알라는 일자(一者)이며 통일체로서의 신을 지칭합니다. 물론 창세기와 욥기에서 하느님이 일자(一者)가 아닌 다자(多者)로 출현하기는 하지만, 일자(一者)를 궁극적인 신으로 믿는 종교는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것의 근원은 하느님 한 분에게서 시작되었기에 '1(하나)'이라는 수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의미합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주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의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힘을 다하여 너의 주 하느님을 사랑 하여라”(신명 6,4-5).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어디에서 유래했으며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알고 있다고 지혜서의 저자는 말합니다. 믿는 이의 눈으로 보면 우주의 천체와 별들과 해와 달을 비롯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이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으며, 하느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를 제대로 볼 줄 안다는 것은 우주의 중심을 볼 줄 아는 것이고, 우주의 중심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를 당신의 모습으로 빚으신 하느님의 모습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렴풋이 느끼는 정도이지만, 그 언젠가는 너울을 벗고 얼굴을 마주보리라는 희망을 안고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 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소서 4,4-6)

신비주의 영성가인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신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로 숫자 1이며, 인간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숫자 1의 신비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세계의 분열과 인간의 불안이 신과의 합일을 통해서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오직 단 한 번의 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기에 이 ‘하나’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쓸쓸하고 광활한 우주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영원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단 한 번,
모든 것은 단 한 번뿐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

단 한 번뿐,
다시라는 건 없어.

그러나
단 한번뿐이긴 하지만,
한 번 존재했다는 것,

바로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그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지.


요즈음 저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얼마나 읽다가 또 다시 덮을지는 모르겠으나 세계 내에 존재하는 현존재의 실존론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올 한 해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더불어 수십 년을 먹어 왔건만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주 양식인 <성경>과 소박한 찬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전들> 그 중에서도 얼마 전부터 복용하기 시작한 비타민과 같은 <논어>와 여성에게 꼭 필요한 칼슘 같은 <내훈>을 읽으면서 겨울나기를 하는 중입니다.

한 해의 시작인 1월을 보내면서 또 다시 삶의 근원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바로 이 하나 안에서 답을 찾는다고 하니 저 역시도 하느님의 지혜를 간절히 청해 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것들은 그 다음입니다.

우리의 삶이 바로 이 하나에서 출발하여 그 끝이 바로 이 하나로 통하게 됨을... 하나임의 그리고 하나됨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기쁨이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_()_


< 참고문헌 >

Michel Christiaens저, 장익 옮김(2002), 성서의 상징, 분도출판사.
Michel Feuillet저, 연숙진 역(2004), 그리스도교 상징사전, 보누스.
Otto Betz저, 배진아. 김혜진 역(2009). 푸른 영토.
명백훈(2006), 숫자 1 - 하느님의 반영, 경향잡지 1월호.
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 한국문화상징사전 2, 동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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