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료실
내용
여성 상담자로서 여성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입니다. 한 여성이 어떠한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인 전통 안에서 출생하고 성장하며 생활해 왔는지는 각자의 삶의 역사에 따라 다르지만, 여성으로 살아내기 위해 애를 쓴 마음들 안에는 함께 할 수 있는 수많은 경험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한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만의 고유한 발달경로가 있으며 발달단계마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체험이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성의 전 생애를 발달론적으로 보면, 여성은 출생 후 여아에서 소녀, 처녀, 아내, 어머니, 할머니의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각 단계는 단계마다 주어진 삶의 과제들과 위기들이 있으며, 그러한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때 여성들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독신을 지향하면서 아내나 어머니의 단계를 포기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처녀가 미혼모가 되는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정상적인 발달단계에 따라 성장, 발달, 노화해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 생애발달을 성적정체성의 형성과정으로 재해석해 볼 때, 초경 이전의 단계인 여아와 소녀의 단계는 여성성이 분화되기 전의 미분화된 양성성의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청소녀를 포함한 처녀의 단계는 여성성이 분화, 발전되는 시기이며, 아내와 어머니의 단계는 여성성이 발현되는 동시에 모성성이 분화, 발전되는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초경에서 폐경에 이르는 기간까지 여성은 우정과 사랑, 학업과 직업생활 및 임신과 출산과 육아 등 가정생활에서 다양한 성역할을 수행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폐경 이후의 마지막 단계인 할머니 단계는 이미 분화된 여성성과 모성성을 바탕으로 의식적, 무의식적인 남성성을 통합하는 진정한 의미의 양성성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는 개별적인 여성성과 모성성이 남성성과 통합되면서 주변세계를 돌보는 보편적인 모성성으로 확대 발전해나가는 시기입니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낸 할머니들에게는 사랑과 창조와 배려가 이성과 경험으로 결합된 지혜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이는 들어가지만 진정한 의미의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기보다는 이전 단계로 퇴행하는 여성들을 보게 됩니다.
어머니에서 할머니로 이행하는 단계는 가장 길고도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생의 중년기까지 각자가 혼신을 다해 노력해 왔던 것들 즉, 우정과 사랑,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 직업과 창작활동 등 이 모든 것들의 의미를 흔들어서 재점검해보고 전체적으로 통합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삶을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외면해왔던,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향해 떠나는 여행입니다. 내면으로의 여행은 몸과 마음의 고통을 수반하지만, 이 여행을 통해 여성들은 무의식에 묻혀져 있는 지혜의 보물창고를 찾게 되며, 진정한 의미의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으로 살아내어 다시 살아난 지혜로운 할머니들은 보편적인 사랑과 나눔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거의 미해결된 과제로 고통을 받고 있거나 이러한 통과의례에 실패할 경우, 여성들은 무력감에 빠지면서 우울했던 과거의 시기로 퇴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중년기의 일탈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각 단계마다 여성으로 살아내기 위해 애를 쓴 마음들 안에는 여성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수많은 경험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수정된 순간부터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경험의 층을 이루어 왔으며, 그러한 경험들로 이루어진 정신세계는 고통의 창고인 동시에 지혜의 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K. Jung은 인간의 마음 안에 묻혀져 있는 이러한 무의식의 보물들을 원형(Archetype)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원형이란 우리 안에서 활성화되는 정신적인 에너지의 원천으로, 원형들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는 삶의 에너지를 얻고 창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융분석가인 동시에 여성주의 심리학자 진 시노다 볼린(2001)은 그리이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통하여 여성의 심리와 원형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유형들이 여성들의 삶 안에 무의식적인 원형으로 살아있음을 가정하면서, 여성은 일생동안 여러 여신의 영향을 받거나 혹은 한 여신의 유형을 따르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중년기의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때, 어떤 특정한 여신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였는지 아니면 몇몇의 여신들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시노다 볼린의 원형이론을 여성의 발단단계에 따라 적용해 보면, 부모의 딸로 크게 되는 소녀기에는 페르세포네의 원형이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교육에 전념하는 청소녀기에는 아테네와 아르테미스 원형이 활성화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여성으로 성숙해가는 처녀기에는 아프로디테의 원형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결혼과 동시에 아내의 역할을 하면서 헤라 원형이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과정에서는 데메테르 원형의 도움이 필요하고, 직장생활에서는 아테나의 원형이 살아나며, 자녀들이 성장하고 떠나갈 즈음에는 헤스티아 원형이 활성화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의 발달단계에 따른 여신 원형들의 활성화는 중년기에 이르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종교적인 전통 안으로 융합되면서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개인적인 어머니에서 시작된 신뢰와 믿음은 대모(大母)와 태모(太母), 그리고 다양한 여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신앙으로 자리잡게 되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다양한 그리이스 여신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대표적인 원형으로 카톨릭 교회 안에서 숭배되는 성모 마리아 원형을 들 수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의 전통 안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딸인 성처녀로서, 성령의 배우자로서, 성자의 어머니인 성모로서, 그리고 모든 인류의 태모로서 받들어지고 숭배되면서 여성들에게 강력한 힘을 주게 됩니다.
카톨릭이 기독교 성립 이전의 여신 신앙을 마리아 신앙으로 수용한 것과 유사하게 불교 역시 민중의 여신 신앙을 불교적으로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는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지혜의 여신이었고, 관음보살도 자비를 상징하는 여성으로 신앙되며, 코끼리 등에 앉아 미소를 머금고 있는 보현보살 역시 여성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인도 아리안족의 신화에서 최고의 여신으로 대지를 신격화시킨 지장보살 역시 여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의 지장은 대지와 같이 만유(萬有)의 모체이며 만유를 평등하게 자라게 하고 성취시키는 힘을 갖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박도화, 1991).
한편 우리나라의 무속신화 중 창세신화라 할 수 있는 제주도의 설문대할망 신화는 창세여신 즉 태모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바리데기 신화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온갖 고초를 겪는 바리데기 역시 생명을 주재하는 대모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신할망 본풀이에서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는 삼신할머니도 대모신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본래 할머니라는 말 자체는 늙은 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크다는 뜻을 지닌 고유한 우리말 ‘한’과 근원적인 생명을 뜻하는 ‘어머니’의 합성어로서 대모(大母)를 뜻한다고 합니다(강진옥1993).
이처럼 동양 문화권에서도 종교적인 전통 안에서 다양한 여신들이 숭배되어 왔으며 숭배되어온 여신들은 여성들에게 신화적인 터전과 삶의 원동력을 제공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와 장소는 달라도 각 문화권마다 그들이 숭배하고 의지하였던 여신들이 어머니와 할머니의 원형이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창조의 원형으로서의 어머니 원형과 지혜의 원형으로서의 할머니 원형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여성들에게도 삶의 전형이 되며 여성으로서의 삶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고 가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한 여성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고, 후손들의 대모가 되거나 태모가 되고, 사후에는 여신으로까지 추앙받을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에는 그렇게 살다간 그리고 현재에도 우리의 마음 속에 상징적으로나 신화적으로 살아있는 많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중년기는 그동안 여성으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창조적인 원형을 찾고 이를 살려내는 작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 최초로 만난 여성인 어머니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살면서 만나온 소중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하여 여성으로서의 삶을 재조명해 보고, 여성으로 살아낸 삶의 의미를 되찾음으로써, 각자가 처해 있는 삶의 현실에 따라, 그리고 각자의 창조적인 선택에 따라, 진정한 여성으로 다시 살아나는 작업을 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인도해가는 영혼의 안내자인 지혜로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문헌 >
강진옥(1993), “「마고할미」설화에 나타난 여성신 관념”, 『한국민속학』25.
김정희(2003), 가부장제 역사 속에서의 불교, 도교와 여성, 여성환경연대 5월월례포럼 자료
박도화(1991),『보살상 』대원사, 1990.
이부영(1998), 분석심리학, 일조각.
이부영(2001), 아니마와 아니무스, 한길사.
진 시노다 볼린 저, 조주현.조명덕 역(2001),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또 하나의 문화.
여성 상담자로서 여성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입니다. 한 여성이 어떠한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인 전통 안에서 출생하고 성장하며 생활해 왔는지는 각자의 삶의 역사에 따라 다르지만, 여성으로 살아내기 위해 애를 쓴 마음들 안에는 함께 할 수 있는 수많은 경험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한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만의 고유한 발달경로가 있으며 발달단계마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체험이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성의 전 생애를 발달론적으로 보면, 여성은 출생 후 여아에서 소녀, 처녀, 아내, 어머니, 할머니의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각 단계는 단계마다 주어진 삶의 과제들과 위기들이 있으며, 그러한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때 여성들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독신을 지향하면서 아내나 어머니의 단계를 포기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처녀가 미혼모가 되는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정상적인 발달단계에 따라 성장, 발달, 노화해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 생애발달을 성적정체성의 형성과정으로 재해석해 볼 때, 초경 이전의 단계인 여아와 소녀의 단계는 여성성이 분화되기 전의 미분화된 양성성의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청소녀를 포함한 처녀의 단계는 여성성이 분화, 발전되는 시기이며, 아내와 어머니의 단계는 여성성이 발현되는 동시에 모성성이 분화, 발전되는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초경에서 폐경에 이르는 기간까지 여성은 우정과 사랑, 학업과 직업생활 및 임신과 출산과 육아 등 가정생활에서 다양한 성역할을 수행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폐경 이후의 마지막 단계인 할머니 단계는 이미 분화된 여성성과 모성성을 바탕으로 의식적, 무의식적인 남성성을 통합하는 진정한 의미의 양성성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는 개별적인 여성성과 모성성이 남성성과 통합되면서 주변세계를 돌보는 보편적인 모성성으로 확대 발전해나가는 시기입니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낸 할머니들에게는 사랑과 창조와 배려가 이성과 경험으로 결합된 지혜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이는 들어가지만 진정한 의미의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기보다는 이전 단계로 퇴행하는 여성들을 보게 됩니다.
어머니에서 할머니로 이행하는 단계는 가장 길고도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생의 중년기까지 각자가 혼신을 다해 노력해 왔던 것들 즉, 우정과 사랑,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 직업과 창작활동 등 이 모든 것들의 의미를 흔들어서 재점검해보고 전체적으로 통합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삶을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외면해왔던,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향해 떠나는 여행입니다. 내면으로의 여행은 몸과 마음의 고통을 수반하지만, 이 여행을 통해 여성들은 무의식에 묻혀져 있는 지혜의 보물창고를 찾게 되며, 진정한 의미의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으로 살아내어 다시 살아난 지혜로운 할머니들은 보편적인 사랑과 나눔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거의 미해결된 과제로 고통을 받고 있거나 이러한 통과의례에 실패할 경우, 여성들은 무력감에 빠지면서 우울했던 과거의 시기로 퇴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중년기의 일탈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각 단계마다 여성으로 살아내기 위해 애를 쓴 마음들 안에는 여성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수많은 경험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수정된 순간부터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경험의 층을 이루어 왔으며, 그러한 경험들로 이루어진 정신세계는 고통의 창고인 동시에 지혜의 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K. Jung은 인간의 마음 안에 묻혀져 있는 이러한 무의식의 보물들을 원형(Archetype)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원형이란 우리 안에서 활성화되는 정신적인 에너지의 원천으로, 원형들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는 삶의 에너지를 얻고 창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융분석가인 동시에 여성주의 심리학자 진 시노다 볼린(2001)은 그리이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통하여 여성의 심리와 원형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유형들이 여성들의 삶 안에 무의식적인 원형으로 살아있음을 가정하면서, 여성은 일생동안 여러 여신의 영향을 받거나 혹은 한 여신의 유형을 따르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중년기의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때, 어떤 특정한 여신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였는지 아니면 몇몇의 여신들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시노다 볼린의 원형이론을 여성의 발단단계에 따라 적용해 보면, 부모의 딸로 크게 되는 소녀기에는 페르세포네의 원형이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교육에 전념하는 청소녀기에는 아테네와 아르테미스 원형이 활성화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여성으로 성숙해가는 처녀기에는 아프로디테의 원형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결혼과 동시에 아내의 역할을 하면서 헤라 원형이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과정에서는 데메테르 원형의 도움이 필요하고, 직장생활에서는 아테나의 원형이 살아나며, 자녀들이 성장하고 떠나갈 즈음에는 헤스티아 원형이 활성화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의 발달단계에 따른 여신 원형들의 활성화는 중년기에 이르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종교적인 전통 안으로 융합되면서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개인적인 어머니에서 시작된 신뢰와 믿음은 대모(大母)와 태모(太母), 그리고 다양한 여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신앙으로 자리잡게 되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다양한 그리이스 여신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대표적인 원형으로 카톨릭 교회 안에서 숭배되는 성모 마리아 원형을 들 수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의 전통 안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딸인 성처녀로서, 성령의 배우자로서, 성자의 어머니인 성모로서, 그리고 모든 인류의 태모로서 받들어지고 숭배되면서 여성들에게 강력한 힘을 주게 됩니다.
카톨릭이 기독교 성립 이전의 여신 신앙을 마리아 신앙으로 수용한 것과 유사하게 불교 역시 민중의 여신 신앙을 불교적으로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는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지혜의 여신이었고, 관음보살도 자비를 상징하는 여성으로 신앙되며, 코끼리 등에 앉아 미소를 머금고 있는 보현보살 역시 여성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인도 아리안족의 신화에서 최고의 여신으로 대지를 신격화시킨 지장보살 역시 여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의 지장은 대지와 같이 만유(萬有)의 모체이며 만유를 평등하게 자라게 하고 성취시키는 힘을 갖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박도화, 1991).
한편 우리나라의 무속신화 중 창세신화라 할 수 있는 제주도의 설문대할망 신화는 창세여신 즉 태모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바리데기 신화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온갖 고초를 겪는 바리데기 역시 생명을 주재하는 대모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신할망 본풀이에서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는 삼신할머니도 대모신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본래 할머니라는 말 자체는 늙은 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크다는 뜻을 지닌 고유한 우리말 ‘한’과 근원적인 생명을 뜻하는 ‘어머니’의 합성어로서 대모(大母)를 뜻한다고 합니다(강진옥1993).
이처럼 동양 문화권에서도 종교적인 전통 안에서 다양한 여신들이 숭배되어 왔으며 숭배되어온 여신들은 여성들에게 신화적인 터전과 삶의 원동력을 제공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와 장소는 달라도 각 문화권마다 그들이 숭배하고 의지하였던 여신들이 어머니와 할머니의 원형이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창조의 원형으로서의 어머니 원형과 지혜의 원형으로서의 할머니 원형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여성들에게도 삶의 전형이 되며 여성으로서의 삶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고 가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한 여성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고, 후손들의 대모가 되거나 태모가 되고, 사후에는 여신으로까지 추앙받을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에는 그렇게 살다간 그리고 현재에도 우리의 마음 속에 상징적으로나 신화적으로 살아있는 많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중년기는 그동안 여성으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창조적인 원형을 찾고 이를 살려내는 작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 최초로 만난 여성인 어머니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살면서 만나온 소중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하여 여성으로서의 삶을 재조명해 보고, 여성으로 살아낸 삶의 의미를 되찾음으로써, 각자가 처해 있는 삶의 현실에 따라, 그리고 각자의 창조적인 선택에 따라, 진정한 여성으로 다시 살아나는 작업을 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인도해가는 영혼의 안내자인 지혜로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문헌 >
강진옥(1993), “「마고할미」설화에 나타난 여성신 관념”, 『한국민속학』25.
김정희(2003), 가부장제 역사 속에서의 불교, 도교와 여성, 여성환경연대 5월월례포럼 자료
박도화(1991),『보살상 』대원사, 1990.
이부영(1998), 분석심리학, 일조각.
이부영(2001), 아니마와 아니무스, 한길사.
진 시노다 볼린 저, 조주현.조명덕 역(2001),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또 하나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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