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료실
‘홀로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죽음’ 다음으로 가장 큰 공포이다. 죽음의 공포가 위협적인 대상에게 ‘먹혀버림’이나 존재의 ‘사라짐’ 그리고 ‘잃어버림’에 대한 공포라 한다면, 홀로 있음에 대한 공포는 누군가로부터 ‘버려짐’과 ‘외로움’에 대한 공포이다.
이러한 공포로부터 구원해 주는 존재가 바로 항상적 대상으로서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전 생애 동안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베이스캠프이자 돌아와 에너지를 충전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전기지이다. 어머니는 삶이 시작하는 최초의 문이자 죽음으로 들어가는 최후의 문이기 때문이다.
John Bowlby(1907-1990)와 Mary Ainsworth(1913-1999)는 동물행동학을 인간발달에 적용한 대표적인 이론가들로 애착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사랑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애착이란 삶에서 특별한 사람에게 느끼는 강력한 정서적 결속으로 애정이나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는 긍정적 정서이다. 그들에 의하면, 초기 어머니-아기의 애착의 질과 유형이 인간의 전 생애(Life-span) 발달과정에서 개인의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이 된다.
Bowlby는 아동 연구를 통하여 생의 초기에 아기가 어머니에 대한 확고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할 경우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종단 연구에 따르면, 고아원이나 24시간 탁아소에서 자란 아동들은 타인과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결핍이 생기면서 여러 가지 정서적인 문제를 나타냈다. 또한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생후 초기에 어머니와 장기간의 분리를 경험한 아동들의 경우 후에 정서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기의 초기 애착행동으로는 미소(smile), 눈 맞춤(eye contact), 옹알이(babbling), 울음(crying), 붙잡기(holding on), 더듬기(rooting), 빨기(sucking), 따라다니기(tagging) 등인데 이러한 애착행동은 양육자인 어머니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아기 옆에 더욱 가까이 있으면서 돌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아기의 애착행동에 따라 양육자인 어머니 역시 아기를 안아 주고, 아기에게 미소 짓고,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고, 얼러주고, 토닥거려주고, 쓰다듬어주고, 안아 올려주기도 하고, 손을 잡아주면서 아기를 사랑해 주고 돌보아 주게 된다.
약 1세 경 아기가 걸음마를 하게 되면 아기는 어머니를 안전기지(secure base)로 삼아 점차 외부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 때 아기가 애착 대상에 대해 형성한 내적 작동모델(working model)이 향후 대인관계 패턴과 성격발달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야”라는 확신에 기초하여 아기는 용기와 자신감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의존과 독립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외부 세계를 탐색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애착 형성의 가장 주요한 요인은 어머니의 민감성과 양육환경의 질이다. 어머니는 적절한 잡아줌과 놓아줌을 통해 아기가 함께 있음과 홀로 있음, 의존과 독립, 안정과 자유, 쉼과 탐색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상호 애착 행동을 통해 아기는 점차 사랑의 감정과 상호신뢰를 형성하게 된다. 나아가 애착행동은 초기에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지만 전 생애에 걸쳐 사랑하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점차 표상화되고 언어화되고 추상화되면서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한편, Ainsworth는 ‘낯선 상황(Strange Situation)“ 실험을 통해 애착의 유형을 연구하였다. 그녀는 아기들이 외부세계를 탐색할 때 어떻게 자신의 어머니를 안전기지로 삼는지와 두 번의 짧은 격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였다.
그녀는 주 양육자와 분리된 낯선 상황에서 유아들이 보이는 분리불안과 그에 대처하는 다양한 행동들을 통해 유아의 애착유형을 4가지(안정 애착, 불안정-회피 애착, 불안정-저항 애착, 혼란 애착)로 구분하였다.
첫째. 안정 애착 유형은 어머니와 분리되었을 때 어느 정도 불안을 보이지만 부재 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 안기고 반가워하면서 본래의 자기 모습을 빨리 회복하는 가장 정상적인 유형이다. 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기의 경우, 생애 초기의 자아상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이후 아동 청소년기의 사회 정서적 발달과 인지적 과제와 학업수행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나타내었다. 안정된 애착은 교우 관계는 물론이고 이성 관계와 부부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둘째. 불안정-회피 애착은 어머니의 부재 시나 재회 시 모두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로 어머니와의 접촉이나 달램을 거부하고 회피하는 유형이다. 셋째. 불안정-저항 애착은 어머니의 부재 시에는 분리불안을 보이다가 재회 시에는 거부하거나 분노를 보이면서 어머니에 대한 양가적인 행동을 보이는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혼란 애착은 학대 가정이거나, 어머니가 우울증이 있는 경우처럼 병리적인 수준의 결핍된 양육환경에서 자란 아동에게 나타나는 애착의 유형으로 향후에도 정신장애의 유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Ainsworth의 연구는 생애 초기 경험이 전 생애(Life-span)에 걸쳐 성격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초기 어머니-유아의 애착은 인간관계의 원형으로 자리 잡으면서 애착 대상과의 다양한 경험이 사랑과 미움, 분노와 슬픔 등의 정서적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에 따른 내적 작동모델이 형성되면서 향후 대인관계와 관련된 성격구조와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기에 안정적인 애착에 실패하거나 장기간 그리고 지속적으로 애착 대상과의 격리가 일어날 경우, 아기는 분리불안이라는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분리불안은 이미 모체로부터 분리될 때 처음 외상으로 경험하지만 이후 주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점차 안정을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출생 후 반복되는 분리와 애착의 실패는 모든 불안의 원천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타인을 불신하게 되고 ‘애정 없는 사람’, ‘냉정한 사람’ 혹은 ‘병적으로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의존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임상적으로 아동 청소년기의 다양한 문제행동들과 성인들의 왜곡된 대인관계 유형과 패턴들을 보면 그 원인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양육자와의 불안정한 애착이나 애정박탈의 경험은 대인관계에서 병리적인 회피나 집착으로 발전하기 쉬우며 후에 불안장애와 기분장애, 물질 관련장애, 섭식장애, 성장애 등 다양한 정신장애와 성격장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어머니로부터 적절한 보살핌과 적절한 좌절을 통해 신뢰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영혼에 상처를 입게 되며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그러나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약물치료나 심리치료는 한계가 있다. 약물이나 심리치료자가 일시적인 안전기지는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이 갈망하는 것은 초기 안전기지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그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완벽한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완벽한 어머니란 언제 나 늘 그 자리에 함께 있어줄 항상적 대상(Permanent Object)으로서의 어머니이다. 그러나 인간이 희구하는 항상적 대상으로서의 어머니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초기 불완전한 어머니로부터 세상에 내던져짐과 그로 인한 분리불안, 수많은 욕구의 거절당함과 그로 인한 좌절과 분노, 버려짐과 두려움, 잃어버림과 슬픔, 홀로 남음과 외로움 등 삶에서 경험하는 이 모든 상처들을 녹이고 치유할 수 있는 무한한 사랑의 용광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모든 고통을 녹여주는 용광로가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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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순
글 잘읽고 갑니다. 앞으로 제가 용광로 가 되어야 겠습니다.제가 아프니까 아이들도 아픈것 같습니다.아이들은 문제가 없어요 제가 문제가 많지요
12 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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