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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성으로 살아내어 다시 살아나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9.21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3194
내용

여성 상담자로서 여성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입니다. 한 여성이 어떠한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인 전통 안에서 출생하고 성장하며 생활해 왔는지는 각자의 삶의 역사에 따라 다르지만, 여성으로 살아내기 위해 애를 쓴 마음들 안에는 함께 나눌 수 있는 수많은 경험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한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만의 고유한 발달경로가 있으며, 발달단계마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체험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여성의 전 생애를 발달론적으로 보면, 여성은 출생 후 여아에서 소녀, 처녀, 아내, 어머니, 할머니의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각 단계는 단계마다 주어진 삶의 과제들과 위기들이 있으며, 그러한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때 여성들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독신을 지향하면서 아내나 어머니의 단계를 포기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처녀가 미혼모가 되는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정상적인 발달단계에 따라 성장, 발달, 노화해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 생애발달을 성적정체성의 형성과정으로 재해석해 볼 때, 초경 이전의 단계인 여아와 소녀의 단계는 여성성이 분화되기 전의 미분화된 양성성의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청소녀를 포함한 처녀의 단계는 여성성이 분화, 발전되는 시기이며, 아내와 어머니의 단계는 여성성이 발현되는 동시에 모성성이 분화, 발전되는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초경에서 폐경에 이르는 기간까지 여성은 우정과 사랑, 학업과 직업생활 및 임신과 출산과 육아 등 가정생활에서 다양한 성역할을 수행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폐경 이후의 마지막 단계인 할머니 단계는 이미 분화된 여성성과 모성성을 바탕으로 의식적, 무의식적인 남성성을 통합하는 진정한 의미의 양성성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단계는 개별적인 여성성과 모성성이 남성성과 통합되면서 주변세계를 돌보는 보편적인 모성성으로 확대 발전해나가는 시기입니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낸 할머니들에게는 사랑과 창조와 배려가 이성과 경험으로 결합된 지혜로움이 있습니다. 본래 할머니라는 말 자체는 늙은 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크다는 뜻을 지닌 고유한 우리말 ‘한’과 근원적인 생명을 뜻하는 ‘어머니’의 합성어로서 대모(大母)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이는 들어가지만 진정한 의미의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기보다는 이전 단계로 퇴행하는 여성들을 보게 됩니다. 어머니에서 할머니로 이행하는 단계는 가장 길고도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생의 중년기까지 각자가 혼신을 다해 노력해 왔던 것들 즉, 우정과 사랑,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 직업과 창작활동 등 이 모든 것들의 의미를 흔들어서 재점검해보고, 그 속에서 다양한 감정으로 살아 움직이는 인간관계를 전체적으로 통합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삶을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외면해왔던,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향해 떠나는 여행입니다. 내면으로의 여행은 여성으로 살아낸 역사에 따라 몸과 마음의 고통을 수반하지만, 이 여행을 통해 여성들은 무의식에 묻혀져 있는 지혜의 보물창고를 찾게 되면서, 긴 여행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내면의 여행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지혜로운 할머니들은 개인적인 탐욕과 집착, 원망이나 미련 등의 감정으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지면서 보편적인 사랑과 나눔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여성들, 인간관계 속에서 억압이나 착취를 당하고 있는 여성들, 과거의 미해결된 과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여성들, 현재의 문제들에 지나치게 집착해 있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여행을 감행할 여력이 없기에 통과의례 자체를 미루거나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여성들은 좌절과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고, 불행하고 우울했던 과거의 시기로 퇴행하기도 하며, 때로는 중년기의 일탈을 감행하기도 하고, 신체적 정신적인 질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성으로 살아내기가 고통스러운 여성들에게도 자신의 주어진 환경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방법은 있을 것입니다.

중년기는 그동안 여성으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무의식에 묻혀져 있는 창조적 보물인 지혜를 찾고 이를 살려내는 작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 최초로 만난 여성인 어머니의 삶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살면서 만나온 소중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하여 여성으로서의 삶을 재조명해 보고, 여성으로 살아낸 삶의 의미를 되찾음으로써, 각자가 처해 있는 삶의 현실에 따라, 그리고 각자의 창조적인 선택에 따라, 진정한 여성으로 다시 살아나는 작업을 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인도해가는 영혼의 안내자, 지혜로운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은 한국 가정법률상담소 강릉지부 소식지에 올린 관리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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