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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 내 탓, 네 덕 > 2016-0409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루카 12,2)
1. 신화에 나타난 뱀의 상징적 의미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는 뱀을 숭배하는 의식이나 뱀과 관련된 신화가 많았습니다. 뱀은 악의 상징이자 지혜의 상징이고,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며,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자 신약성경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우선, 중국의 인류 창조신화는 뱀과 관련됩니다. ‘열자(列子)’ 황제(黃帝)편에, ‘복희씨(伏羲氏)와 여와씨는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지만 성인의 덕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큰 강 유역의 사람들은 하신(河神), 즉 강의 신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믿었는데, 중국인들은 황하의 신이 네모진 얼굴에 황금색을 띤 작은 뱀으로, 그 눈 밑에 붉은 점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중국의 창조신화에서 뱀(여와)이 등장하듯이, 그리스 신화에서도 최초의 인간은 뱀(kekrops)입니다. 뱀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흙으로 빚은 인간’의 원형을 상징하며, 원초적 생명의 율동을 뱀에서 보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뱀은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상징물이며, 후일 논리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잎새의 흔들림 소리로 제우스의 신탁을 알려주는 도도나의 나무에도 뱀이 있었고, 트로이의 패망을 예언한 카산드라는 뱀에게서 예언의 능력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바빌론의 대지의 신 에아(Ea, Enki)도 뱀의 형상을 하였으며,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Isis)의 올리브 잎 머리 사이에는 뱀이 있는데, 이 뱀은 태양을 상징합니다. 머리를 치켜든 모양의 뱀은 이집트 태양신 ‘레(Re)’의 상징으로 이집트 파라오 왕들의 왕관 머리장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원시 종족의 메디신(呪醫)들은 뱀의 정령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대 오리엔트의 종교에서는 뱀에게 병을 치료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졌는데 이것은 뱀이 허물을 벗음으로써 영원히 젊어진다는 신앙에 기초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는 독에서 약을 만드는 의약과 의술의 신(神)입니다. 아스클레피우스 역시 에피다우로스의 뱀으로 제시되며 그에게는 텔레스포로스(Telesphoros)라는 전령이 있어서 처방들을 읽어주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헤르메스(Hermes)는 두 마리의 뱀이 감겨 있는 지팡이, 카두케우스(caduceus)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헤르메스의 지팡이는 서양에서 의술의 상징이 되었으며 융(Jung)은 이 길들인 뱀과 길들이지 않은 뱀이 겨루는 지팡이 그림에서 치료의 원리를 읽어냈다고 합니다.
또한 그리스 신화의 괴녀(怪女) 메두사(Medusa)는 머리카락이 모두 뱀으로 되어 있고, 자기를 보는 사람들을 돌로 화하게 하여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서양에서 뱀은 교활, 음흉, 혼란, 초월, 사악, 타락, 위험, 경계, 죽음 등 부정적인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불경 ‘법화경(法華經)’ 등에서 뱀은 유혹(誘惑)이요 애욕(愛慾)을 의미합니다. 그는 제 몸을 그냥 드러내는 게 아니라, 꽃나무 뿌리 밑에 숨어서 사람을 미혹시킨다.“ 또는 ”뱀은 악업이 깊은 동물이라, 그의 일생이 대단히 괴롭다“고 하였습니다.
아트 드 브리스(Ad De Vries)에 의하면, 뱀은 불교에서 생명의 윤회(the wheel of life)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윤회를 상징하는 뱀은 제 꼬리를 입에 문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우주의 통일, 자연계의 자기 충족, 양성구유, 생명의 지속, 육체와 물질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꼬리를 무는 뱀(용)인 우로보로스(Ouroboros)는 스스로를 죽이고 자신과 결합하여 자신을 수태시키고, 죽고, 다시 부활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자웅동체인 우로보로스는 이미 그 자체가 대극으로 구성되며 동시에 이것을 결합하는 상징성을 지니게 됩니다.
2. 성경에 나타난 뱀의 상징적 의미
한편,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뱀은 50여 차례나 언급되는데 그 역할도 다양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뱀은 가장 간교한 존재로 소개됩니다(창세기 3,1). 뱀은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따 먹어도 되지만 선악과만은 금지'하신 하느님 말씀을 교묘히 이용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합니다.
뱀의 유혹에 빠진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을 불신하고 불순종으로 원죄를 범하게 되며, 이 때문에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뱀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어야 하는 가련한 존재가 되었습니다(창세 3, 14-15).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에서도 뱀이 등장합니다. 모세의 지도 아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과 모세를 거슬러 대들자, 하느님께서는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죽음'의 상징인 불 뱀을 보내십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뱀에 물려 죽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찾아와 하느님의 진노를 거둬주시도록 기도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놓게 하셨고 뱀에 물린 사람들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민수 21,4-9). 뱀이 역설적으로 '구원'의 수단이 된 것입니다.
뱀에 대한 신앙(기원전 15-14세기)은 민수기의 청동 뱀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으며(민수 21,6-9), 가나안 지방의 대표적 신인 '바알'의 상징도 뱀이었습니다.
구리 뱀을 만들어 섬기는 풍습은 기원전 7세기 히즈키야 왕 때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모세의 구리 뱀도 조각나서 없어지지만(2 열왕 18,4), 훗날 요한복음 작가는 구리 뱀 사건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하였습니다(요한 4,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4-15). 치유와 구원을 상징하던 모세의 구리 뱀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제자들에게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 16)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신약성경에서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뱀은 부정적 의미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뱀은 죽음의 세력, 사탄을 상징합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사탄을 짓부수시어 여러분의 발아래 놓으실 것입니다"(로마 16,20).
동양에서 길조로 중요하게 여겨졌던 용이 성경에서는 뱀과 동일시되어 요한묵시록에서는 악마의 상징으로 나옵니다. “하늘에서는 전쟁이 터졌습니다. 천사 미카엘이 자기 부하 천사들을 거느리고 그 용과 싸우게 된 것입니다.”(묵시 12, 7-9)
이처럼 성경 안에서 선과 악의 상징이었던 뱀의 야누스적 성격은 교부들에게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나무에 걸린 뱀"이라 불렀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지혜를 의인화해 묘사할 경우 뱀이 그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 비잔틴이나 콥트 교회 주교들의 지팡이 손잡이 부분에는 뱀 모양이 있는데, 이것은 뱀처럼 지혜롭게 회중을 인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을 싫어합니다. 그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파충류와 싸운 무서운 기억의 잔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뱀에 대한 기억들은 결국 인간이 뱀에게 투사한, 인간 안에 내재된 본성인 ‘선과 악 모두’를 동시에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 존재하는 뱀에 대한 기억들은 현대인들의 꿈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Jung에 따르면, 꿈에 나타나는 용이나 뱀은 선과 악이 분화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무의식성을 상징합니다.
상징적으로 빛은 의식과 동의어인 반면, 어둠은 무의식과 동의어입니다. 따라서 동굴이나 어두운 장소에 머물게 되는 뱀은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림자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미분화되고 미성숙한 무의식성은 의식화 과정을 통해야지만 비로소 빛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식화는 가장 강한 태고적 체험인 무의식성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그래야지만 성숙한 태도로 빛의 세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집단이나 개인에게 있어서 영웅적인 행위란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괴물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무의식에 대한 의식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성이 위협을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워 무의식과 대면하기를 주저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뱀의 다양한 상징들을 어떻게 의식화하면서 받아들이고 인격적으로 통합하느냐는 원시인이나 고대인들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뱀의 다양한 속성들을 의식화하는 과정은 한편으로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훈련과 수련을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악의 존재가 밖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열심히 투사하고 있는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두어들임으로써 가능하게 됩니다.
악으로 기울기 쉬운 동물적 본성의 지혜가, 행복과 치유를 갈망하는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지혜로 거듭나고, 궁극적으로는 참 진리이자 빛이신 하느님의 지혜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위치에서 지속적인 자기성찰과 회심을 통하여 허물벗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꼬리를 입으로 물고 있는 원형의 뱀 우로보로스처럼, 그리스도인은 매년 사순시기 동안 죄와 허물을 벗는 전례 의식을 통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 상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 태어나는 부활을 체험하곤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부활이란, 유혹과 악의 상징인 이브의 뱀에서, 불신과 죽음의 상징인 광야의 불뱀을 거쳐, 치유와 구원의 상징인 모세의 구리뱀을 바라보며, 부활과 영생의 상징인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사순시기 동안 제 안에 자라고 있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마음과, 남을 탓하는 마음, 의심하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을 돌아보고 살피면서, 낡은 마음의 허물을 벗고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나는 은총의 사순시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전례상으로 부활을 지난 지금도 역시 제자리입니다. 제 자신의 그림자와 허물이 밀 옆에 공존하는 가라지처럼 한편에서는 여전히 쑥쑥 자라나고 있음에 인간적인 비참함과 동시에 실존적인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우로보로스의 꼬리를 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하지만 제가 믿고 따르는 주님은, 자비로운 사랑으로 저의 허물을 다시 감싸주시고 빛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리라 믿으며, 오늘 하루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_()_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요한 6,20)
< 참고문헌 >
Eric Ackroyd 저, 김병준 역(1997), 꿈 상징 사전, 한국심리치료연구소
Michel Christiaens 저, 장익 옮김(2002), 성서의 상징, 분도출판사.
Michel Feuillet 저, 연숙진 역(2004), 그리스도교 상징사전, 보누스.
한국문화상징사전편찬위원회(1996), 한국문화상징사전 1, 동아출판사.
한국융연구원 C.G.Jung 저작 번역위원회 역(2002), 원형과 무의식, 솔 출판사.
한국융연구원 C.G.Jung 저작 번역위원회 역(2004), 인간과 문화, 솔 출판사.
허영엽 신부(2013), 평화신문 1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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